1. Main page
  2. 재외동포 광장
  3. 재외동포문학
  4.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글짓기(초등)] 별
작성일
2021.02.04

[최우수상 - 청소년글짓기 부문]



신 율 / 중국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은 마치 하나의 작은 은하계 같다. 우리 모두는 각각 하나의 별이고 그 의미를 어떻게 부여하느냐에 따라 어느 별은 태양이 되기 도 하고 또는 먼 곳에 있는 은하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별들이 나에게 무엇인지 꽤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특히나 가까이에 있던 ‘그 별’은 나에게 태양이었는데 말이다.

푸른 달빛이 별들을 장식할 때, 하늘은 마치 바다처럼 끝없이 펼쳐진다. 고요하고 또 신비롭다. 나무숲 사이로 흐르는 물, 아니 물이 아니라 달빛이 다. 그 달빛은 잠자는 대지의 얼굴을 어루만져 주고 그 위에 은빛 이불을 덮 어준다. 나의 생각도 창가에서 느껴지는 은은한 바람을 따라 사방으로 퍼지 며 불현듯 그중에서 가장 애틋하고 서운한 기억 하나를 끄집어낸다.

중국에 살다 보니 이별이 확실히 한국보다 많은 편이다. 애초에 중국에 거주하러 오는 게 아니라 유학하러 오거나 일 때문에 오기도 하니 일이 끝 나면 돌아가기 마련이다. 그러니 함께 긴 시간을 보내는 사람을 가족을 제외 하면 찾기 힘들다.

나는 어렸을 때 엄마 아빠가 바쁘셔서 할머니와 함께 보낸 시간이 많았 다. 처음 유치원에 간 날, 걷기 대회, 할머니 팔을 베며 잠들었던 기억. 그 속 에서 할머니에 대한 애정이 물이 드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내 마음속에 스며 들었다. 할머니 댁에서 놀고, 먹고, 자고, 엄마 잔소리도 듣지 않을 수 있으 니 할머니 댁을 많이 갔었다.

“시간은 마치 날아다니는 화살 같다.”
이 말은 거짓말 같지만, 한편으론 다시 뒤돌아 생각해 보면 그 말이 생생 하게 와닿는 때가 있다. 시간은 마치 화살처럼 빠르고 난 점점 커가면서 할 머니와 보내는 시간이 확실히 적어졌다. 할머니에 대한 애정은 변함이 없지 만, 할머니와의 거리는 점점 멀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할머니께서는 손주들이 할머니 댁을 찾을 때마다 항상 예뻐해 주 시고, 또 잊지 않고 와준 것을 기뻐해 주셨다. 할머니는 우리들이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사주시고, 맛있는 것을 드시게 되면 손주들에게 한 번씩 전화해서 같이 먹자고 하시고, 용돈도 주셨다.
할머니께서 식당을 하실 때, 연세 때문에 배달을 직접 못 하셔서 내가 대 신 해드리면 나에게는 그 음식 가격보다 더 많은 돈을 주셨다. 그렇지만 할 머니 식당은 우리 동네였고, 나는 친구들 보기 민망해서 배달을 많이 도와드 리지 않았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죄송하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그러다 갑자기 할머니께서 작년 겨울에 한국으로 이사 가신다는 말을 듣 게 되었다. 그 소식은 나에게 정말 충격적인 말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있는 시간이 요즘 들어 짧기는 했지만 그래도 할머니가 옆에 없는 건 정말이지 생 각만 해도 허전하다 못해 힘들었다. 그날 밤은 잠도 오지 않고 생각만 많았었다.
그런데 할머니께서 한국으로 이사 가시는 날이 늦춰지면서 우리 집에서 일주일 정도를 함께 지내게 되었다. 일주일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할머니 와 함께 최대한 좋은 추억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그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나 는, 아니 우리 가족은 할머니와 외식도 가고 세기공원도 가고 산책도 많이 했다. 그러나 한없이 부족하고 서운한 마음을 다 채울 수는 없었다.
할머니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엄청나게 아니 빛처럼 빨리 지나가고 뭘 해 도 확실하게 허전함을 채우진 못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결국 할머니가 한 국에 가시는 날이 다가왔다.
2019년 12월 18일, 할머니가 한국에 가시는 날. 할머니께서는 애써 울음 을 참는 나에게 말씀하셨다.
“어쨌든 간에 우린 같은 하늘 아래 있어. 네가 아무리 울어도 바뀔 수 없 는 건 바로 이 할머니가 한국에 가는 일이야.”
아니요, 할머니. 저는 할머니 생각에 동의할 수 없어요. 제가 아무리 할 머니를 보고 싶어 해도 그 순간마다 할머니를 만날 수 없고, 1년에 두 번만 볼 수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나요. 사람들이 우리 할머니는 한국에 있어 서 보고 싶어도 못 본다고 했을 때 나는 할머니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래서 이제 할머니께 잘 하자고 생각했는데, 어렸을 때 기억을 이제야 겨우 다 떠올렸는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요. 할머니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제가 어렸을 때 기억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 나요. 할머니랑 보내는 시간이 예전에 비해 적어져도 그래도 할머니랑 보내 는 시간이 짧지만은 않았어요. 한 달에 한 번은 할머니네 가서 놀았었고 거 기에서 할머니가 해준 맛있는 음식, 할머니랑 같이 티브이 보면서 웃는 기억 도 재밌었는데 할머니네 공원 앞에서 축구하며 축구 선수를 꿈꿨던 시절도 정말 재밌었는데 할머니네 집 앞에 있던 호수에서 붕어를 손으로 잡았던 것 도 재밌었는데 할머니가 아침마다 일찍 일어나서 한글학교에 데려다줬던 기 억도, 그땐 싫었지만 지금은 추억이 되었는데 왜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신 다 음에야 이런 생각이 나는 걸까요? 아무리 같은 하늘 아래, 이웃 나라에 있 어도 자주 만날 수 없고, 만난다고 해도 그렇게 오래 함께 있을 수 없잖아 요. 같은 하늘 아래라고 빨리 만날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같은 하늘 아 래라도 각자 생활을 하고 있고, 만나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잖아요. 할머니가 한국으로 가서 어쩌면 실감이 안 나서 제가 할머니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할머니를 자주 못 본다는 서운함 때문에 그런지도 모르 죠.

결국 나는 할머니께서 공항 가는 날에 배웅해드릴 수 없었다. 그날은 평 일이었고 학교에 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실 감이 안 났기 때문이다. 그러다 학교에서 혼자 앉아있을 때 하늘을 가르며 지나가는 비행기를 보면 왠지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평소에 말이 많고 장난기가 많은 나는 그날만큼은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울고 있었다. 내가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알아챈 친구는 나를 위로했다.
그날 하루 종일 땀인지 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뭔가가 자꾸 흘러내려 나는 자꾸만 닦고 또 닦았다.
할머니의 온실 속 화초처럼 자랐던 나는 어느덧 하나의 나무가 되었고 그 나무는 이미 예전처럼 보호할 필요가 없지만, 그 안에는 항상 할머니와의 첫 번째 기억이 남아있다.
또 하나의 별빛이 찬란한 달빛을 비추는 밤이다. 저 밤하늘에 뜬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사람들에게 나아갈 방향을 알려 준다. 우린 은하계 속의 별처럼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모른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지. 그 별들이 누 군가의 태양이 되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은하 그 자체가 되리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