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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 한 편씩 읽기

[단편소설] 히피는 아니지만
작성일
2022.12.13

단편소설 부문 가작


히피는 아니지만

김 경 숙 (호주)


절벽 위의 집이 매물로 나왔다. 그 집은 절벽 위에 조성된 작은 단지 안에 자리 잡은 세 채 중 하나였고. 호주 초기시절에 건축기사 윌리엄이 자신의 세 딸을 위해 손수 지은 클래식한 벽돌집이었다. 100년이 훨씬 넘은 그 집을 보자마자, 목가적인 옛 스런 정취와, 야라 강의 시원한 전망에 나는 망설임 없이 매입했다.
첫째 딸이 살던 윗집은, 현 주인이 증축 후 분리했고. 가운데 우리 집과 아래쪽의 셋째 딸이 살던 조엔 집은, 담벼락이 형성되어 사적 공간이 보장된 뒤뜰과 달리, 앞마당은 울타리 없이 자매들이 마당과 차고 문을 함께 공유하던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 연유로, 조엔은 우리 집 현관문을 부담 없이 열고 들어오곤 했다. 예의 바른 그녀는 친절하고 상냥했다. 그런 그녀를 나는 환영했고,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좋은 이웃사촌의 관계를 이어나갔다. 종종 영국식 예절을 들먹이며 내비치는, 조엔의 인종편견적 우월감을 상대하기엔, 내심 불편한 적도 있었지만, 그것은 어쩌면 동양인이라는 나의 자격지심일 거라고 치부하며 그녀를 이해했다.
무르익은 봄볕이 화사한 10월의 주말이었다. 차고에 낡고 녹슨 승합차가 보인다. 호기심에 들여다본 차 안에는, 땟국이 흐르는 이불이 뒷좌석에서 헌 옷들과 엉겨 있고, 더러운 앉은뱅이 의자를 비롯한 식기 등 잡동사니들이 가득 차 있었다. 기겁하며 돌아서는데, 조엔이 갈색 장발의 덥수룩한 수염과, 후줄근한 옷차림의 남자와 함께 나온다. 조엔과 짧은 포옹을 마치고 그가 차를 몰고 떠났다. 조엔이 다가와 속삭이듯 내게 말한다.
“조라고 부르는 우리 큰아들 조셉이야. 어릴 때부터 모범생이었고, 대학에서 의학을 전공한 수재였는데… 지금은 히피로 살고 있어.”
“맏아들이 히피라고요?”
이사 온 첫날, 이삿짐 정리를 하느라 바쁜 와중에 윗집 줄리 부부는 초콜릿 상자를, 아랫집 조엔 부부는 와인병을 들고 건너왔었다. 상류층 매너로 동양인인 우리를 은근히 탐색하고는, 자기들 소개와 함께 ‘존칭을 빼고 이름을 부르라’며 친구를 자청하던 우아한 조엔에게 히피 아들이라니….
도저히 어울릴 수 없는 조합이었다. 그런 나의 속내를 읽은 듯, 그녀는 저녁식사에 초대하며, 한 울타리 속 이웃이 된 축하자리라고 한다.

동생 진후와 나는 뒷마당에 피어난 은방울꽃으로 부케를 만들고, 조엔 집으로 건너갔다. 조엔의 남편 스콧 씨가 식탁을 차리는 동안, 그녀는 집 구경을 시켜준다. 그녀를 뒤따라 경사진 베란다 밑의 벽부터, 절벽 경계선인 낮은 철조망 사이에 조성된 조엔의 비밀 정원으로 들어섰다. 좁은 오솔길 위로, 커다란 상록수가지의 초록 잎이 하늘을 덮었고. 그 옆으로 활짝 핀 복사꽃 진분홍 물결의 매혹적인 장관이 펼쳐진다. 복사꽃 주변에 색색으로 피어나기 시작하는 물오른 꽃망울들, 나무울타리를 기어오르는 덩굴풀숲에는 꼬마 요정들이 살고 있는 듯한 경이로움이 넘쳐났다.
“이곳은, 내가 힘들 때 찾아와 쉼을 얻는 곳. 큰아들 조가 매년 다른 테마로 꽃을 심어주는 나만의 비밀 요새야. 올해의 주제는 ‘사랑은 모든 허물을 덮는다’라는 Love로 정했지. 여기서 흙을 만진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되었는지 60대 중반인 나의 육체 건강 지수가 40대로 나왔지 뭐야.”
천진난만하게 미소 짓는 그녀의 날렵한 외모는 연한 북청색 바지와, 셔츠, 은발의 베레모에, 무색 뿔테 안경이 어우러져 실제로도 50대로 보였다.

정원 뒤로 완만하게 경사져 내려간 반지하의 창고에 이르렀다. 육중한 나무문이 둔탁한 음을 내며 열렸다. 빛이 차단된 내부는, 와인 병들이 빽빽이 와인랙을 채우고 있었다.
“우리는 자녀와 손자들이 태어날 때마다, 와인을 두 상자씩 구입해서 이곳에 저장했다가, 그들이 18세가 되면 한 상자를, 그리고 21세 성년식에서 나머지 상자를 축배로 사용하고 있어. 물론, 우리부부의 매년 생일과 결혼기념일에도 그리하고.”
“와우… 대단하네요.”
나는 와인보다 맥주 체질이었지만, 눈앞에 보이는 와인 저장고의 위용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집 구경이 끝나고, 구운 감자를 곁들인 로스트 치킨에 텃밭에서 뜯어온 로켓 샐러드로 차려진 식탁은, 조엔이 저장고에서 꺼내온 12년된 와인과, 재스민 향초, 은방울꽃 향기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Cheers!”
건배를 끝내고 상기된 노부부는 가족 이야기를 격의 없이 들려준다.
낙농업의 산지인, 호주의 최남단 타스마니아 섬에서 유학 온 조엔과 멜버른 토박이인 스콧 씨는 17세 때 대학 입학식에서 첫눈에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와 주정부의 교육부장관을 역임한 원로 학자 스콧 씨는 일 처리는 예민하고, 빈틈없지만, 의외로 성격은 소탈하고 유머가 넘친다. 자산가임에도, 낡은 차를 손수 수리하며 고색창연한 집안의 장식품들은, 그의 검소함이 배가되어 단순하고도 깔끔했다. 부인 조엔이 명문 사립고교 교사 출신답게 자녀의 교육관에 대한 소신을 냉철하게 내비친다.
“나는 엄격한 기숙사 생활을 하는 사립여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아이들은 모두 공립학교에 보냈어. 내 관점으로 볼 때, 부유층 아이들이 공립학교 학생들과 달리 선별되었다는 자칭 귀족화에 물드는 게 싫었고, 아이들이 어려운 사람들도 포용할 줄 알아야, 폭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다는 내 교육 철학 때문이라고 할까.”
조엔의 말에 스콧 씨가 끼어든다.
“바쁜 나를 도와 아이들 교육을 조엔이 도맡아준 덕분에 항상 조엔에게 고마웠거든. 은퇴를 하고 나서는 아내가 아이들을 키워주고, 수고해준 보답으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아침식사를 챙겨 조엔의 침대로 가져다주며. 저녁식사 준비도 내가 하고 있지.” 스콧 씨는 조엔의 손등에 살짝 입맞춤을 한다. 이렇듯 다복한 가정으로 보였지만, 내가 궁금했던 것은 그 전날 보았던 맏아들 조의 행색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우선 선물로 준비해간 오르골의 아리랑 멜로디를 들려주었다.

“이 곡은, 한국의 얼과 애환이 서린 노래로 힘들어도 기쁘게 가라는 메시지가 담겨있는 한국의 대표적 민요 아리랑이에요.”
아리랑의 애잔한 가락에 맞춰 부부는 몸을 흔들며 “원더풀”을 연발했다. 조엔이 오르골의 매화 문양을 쓰다듬으며, 큰아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조는 의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최단기간에 전문의를 취득한 수재였는데 돌연, 히피가 되었어. 히피 여인과 결혼해 아이들을 넷이나 낳았는데, 이혼하고 지금은 혼자서 살며….”
조엔은 잠시 숨을 고른 후, 큰아들 조는 봄이 되면 엄마만을 위한 정원을 꾸며주고, 겨울에는 벽난로 땔감을 차곡차곡 쌓아주고 가는 심성 고운 아들이며. 둘째는 금융컨설팅 일을 하고 있고. 셋째 딸은 유명 피아니스트로 각자 분야에서, 성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덧붙인다. 그들 부부는 자식들이 어떤 선택을 하던 그 선택을 존중하며, 그 선택으로, 자녀들이 행복하면 자신들도 덩달아 행복하다는 말로, 큰아들에 대한 의구심을 풀어주었지만, 그들의 대화 속에는 조에 대한 미련이 담겨있었다. 조엔은, 재차 조가 영특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조의 천재성이, 그를 히피의 세계로 빠져들게 한 것 같아….”
자유를 갈망하는 조의 영혼이 나의 촉(觸)을 건드리며 서서히 나의 영혼을 잠식해 가고 있음을 그때는 몰랐다. 당시 나는 동생 진후와 디자인 관련 사업 설립 준비로 인한 분주함에, 이웃에 대해 소소한 신경을 쓸 여력과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동분서주한 결과, 이태가 지나서야 우리 회사는 점차 궤도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겨울로 접어들자, 조엔 부부는 호주의 습한 겨울을 피해 따뜻한 프랑스의 시골 농가를 찾아 떠났다. 집 단속을 부탁받은 나는, 그들의 우편물을 수거해 보관통에 넣고 커피를 내려 베란다로 나왔다. 절벽 아래로 겨울 햇살이 부서져 내리는 한낮이 주는 평온함은, 재택근무가 주는 또 하나의 이점이다. 문득 기척이 느껴져 돌아다 보니, 옆집 베란다에 예의 그 남자가 벽에 등을 대고 앉아 항만 쪽을 응시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자리는, 평소 조엔 부부가 애쉬나무 테두리에 등나무 줄기를 엮어 만든 디자인 의자를 나란히 붙여놓고, 석양빛으로 물든 야라 강을 마주하고 담소를 나누던 곳. 또한 기품 있게 앉아 있는 조엔 앞에서, 저녁 만찬을 차리느라 은발의 스콧 씨가 바삐 움직이던 곳이다.
그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멀리 녹색의 상선이 정박해 있는 도크랜즈항만 앞으로 흰색 요트들이 수면을 가르는 단조로운 전경뿐이다. 그는 오랫동안 미동하나 없다. 그 모습에 쓸쓸함이 배어 있었다. 갑자기 그 쓸쓸함이 한기(寒氣)가 되어 내게로 들어와 가슴속을 훑는다. 나는 큰 소리로 말을 걸었다.
“당신 누구야, 왜 거기 있지?”
쇳소리를 내는 나를 바라보는 처연한 그의 눈빛이 선량하다.
“스콧의 아들이며, 내 이름은 조.”
수지 할머니가 살던 집에 새 주인인 진희라는 한국인이 이사 왔다는 얘길 들었다며 아는 체를 한다.
쓰레기차를 몰고 가던, 삼 년 전에 보았던 첫인상의 불량스러움이 가신 모습에 그에 대한 반감이 사라졌고. 그와의 대화가 끌렸다. 급히 부엌으로 와서 냉장고를 뒤졌다. 스테이크용 고기를 얇게 저며, 참기름과 간장소스에 볶고 대충 색깔 별로 채소를 모아 잡채를 만들었다.
“조, 우리 집에서 티타임 할래? 너를 위해 한국 국수를 만들었는데….”
그렇게 그와 유대를 갖게 되었다. 나보다 한 살 어린 그는 심성이 부드러웠고.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우리 사이에는 친밀감이 형성되었다.

천성적으로 역마살이 있던, 나는 호주주재 상사원이었던 부친을 따라 어려서부터 호주에서 학교를 다녔고. 일본 하라주쿠에 머물며, 당시 준공된 오모테산도힐스의 디자인에 매료되어 일본에서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다. 그렇게 청소년기를 호주와 일본에서 보낸 나는 한국사회 적응이 힘들었고 답답했다. 그런 환경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나를 결혼이라는 틀을 거부하고 동생 진후가 사는, 고풍스러움과 현대적인 요소가 혼합된 도시 멜버른에 터를 잡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어떤 고정된 틀에 구속되는 직장생활을 싫어해 조소과 출신인 진후와 단둘이 열정과 용기만으로 회사 창업에 뛰어들었다. 비혼주의자라는 타이틀을 달고서…. 그러니 영혼의 자유를 지향하다 못해 추구한다는 면에서, 조와 나는 어린아이들처럼 아주 죽이 잘 맞아, 스스럼없이 친구가 되었다.

“나에게는 내 영혼에 대한 비밀이 하나 있어.”
촉망받던 의사의 길을 버리고 히피가 된 이유를 묻는 나의 고루한 질문에 진지한 표정으로 운을 뗀 그가 이어 말한다.
“그것은 바로 내가 내 영혼을 버릴 때야. 그때 비로소 나는 나의 영혼에게 다가갈 수 있고, 적나라한 실제 내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거든.”
그의 철학적 대답이 어렵다. 나는 그의 말을 이해하려는 대신, 젓가락질이 서툰 그를 위해 포크와 스푼을 가져다주며, 자연주의자이며 데이지라는 이름의 신비스러운 히피 여인과의 운명적 만남에 대한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 스키를 즐겼던 조는 28살이 되던 10년 전 겨울, 스노위마운틴 진다바인에서 휴가를 보냈다. 그곳은 페리셔 스키장까지 20여 분 정도 산길을 운전해야 했지만, 전력회사 ‘스노위하이드로’의 댐 공사로 생겨난 호숫가에서, 노을이 아름다운 저녁을 맞는 설렘에, 매년 그가 즐겨 찾는 곳이었다. 멜버른에서 일곱 시간 가까이 운전을 하고 도착한 그는 카페 ‘버치우드’에서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터키 이민2세인 히피 여인 데이지를 만났다. 원목으로 꾸며 산촌의 느낌이 가득 담긴 카페 내부는 푸근함을 안겨주었고. 주방을 비롯한 스태프들은, 모두 히피들이었다.
그녀, 데이지가 다가와서 조에게 메뉴판을 내밀었다. 붉은 머리에 검은 눈동자로 가득 찬 커다란 눈매가 주는 강렬함에, 그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주문을 받은 그녀가 돌아서자, 검은색 바탕에 빨간 히비스커스 꽃이 어우러진 드레스를 입은 뒷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그때였다. 갑자기 그녀가 뒤돌아보았고, 조와 서로 시선이 마주쳤다. 일순, 숨이 멎는 듯한 느낌 속에 그는 전율했다.
그즈음, 동료 의사들과의 경쟁심이 얽힌 진부한 관심사에 영혼이 피폐해져 가던 그에게, 이국적인 히피 여인과의 교류는 그를 감싸고 있던 벽을 허물었고 새로운 세계를 보여 주었다. 신열을 앓던 그는 결국 일생일대의 선택을 했고. 곧장 스노위마운틴의 진다바인으로 거처를 옮겼다. 데이지와의 사이에서 아이들이 생기고, 카페에서 일하며 누리는 자연 속 생활은 행복했다. 모친 조엔의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 -

“그러니까 데이지를 처음 보는 순간 끌렸다는 거네? 너희 부모님처럼….”
“맞아. 전광석화 같은 사건이었지.”
“부전자전이구나. 넌 아빠를 닮았어.”
나의 말에 그가 크게 웃었다. 찻물을 위해 유리 포트에 뜨거운 물을 부었다. 샛노란 국화꽃 몽우리들이 놀라 유영하기 시작한다. 조는 뜨거운 찻잔을 두 손으로 감싸고 말을 잇는다.
“영국에서 건너와 4대째인 낙농 회사를 승계 경영하는 외할아버지는, 귀족 가문답게 영국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어. 어릴 적 내가 ‘영국’이라고 하면 ‘조셉 모리슨! 영국이 아니고 대영제국이라고 해야지’라고 정정해 주시곤 했어. 그런 분위기 속에서 자란 엄마는 내가 데이지와 결혼을 하고 히피로 살겠다고 하니 침묵하시더라. 대신, 아빠가 ‘조셉! 다시 한 번 생각해라, 그리고 신중히 결정해’ 단 두 마디를 하셨지. 나는 ‘인간에게는 각자 정해진 자리가 있고, 나는 내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라고 말하고 집을 나왔어. 하지만 나는 그런 반응을 보인 엄마를 이해하고 사랑해.”
찻잔을 들어 올리는 그의 얼굴에 스산한 자작나무 바람이 겹친다. 그는 국화 향을 음미하며 풀어낸, 자신의 내력을 이제 마무리하며 들려준다.

- 그 후, 조엔은 아이들이 태어나자 ‘조, 너의 선택을 존중한다. 이제 아이 교육 문제도 있고 하니, 이곳으로 옮겨와 가족과 왕래하며 살면 안 되겠니? 보고 싶고 사랑한다’는 문자를 보내왔다. 문자를 읽고 갈등하는 그를 데이지는 배려해주었고, 멜버른 근교 단데농 숲속 마을로 거처를 옮겼다.
그사이, 연년생인 셋째와 막내가 태어났지만, 조엔은 한 번도 손주들을 찾지 않았고. 물론 데이지에게도 타인처럼 무관심으로 대했다. 그런 생활을 견디다 못한 조는, 살던 집을 정리해서 데이지와 아이들을 고향 진다바인으로 돌려보내고. 허탈감에 빠진 그는 승합차 속에서 홀로 노숙을 하다, 얼마 전 단칸방을 마련했다.

- 나는 그의 긴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 주면서 생각에 잠겼다. 조엔과 스콧 씨가 겉으로 보이는 타인의 시선에서는 당당하고, 거침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한편으로는 히피 며느리에 대한 드러낼 수 없는 그들만의 고뇌가 있을 거라는…. 망설이다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내 관념상, 그러니까 음… 히피들은 말야. 마약, 이상한 옷차림, 록음악, 섹스, 뭐 이런 단어가 떠오르는데 거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지?”
“좋은 질문이야, 히피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시대마다 달라, 히피들도 다양한 개성의 소유자들이거든. 데이지를 비롯해 이곳의 히피들은 나름, 철학과 올바른 가치관 위에 자연에 대한 사랑과, 인간애를 추구한단다.”
“전원의 꽃을 히피의 상징으로 삼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고. 그런 것들이 신경과 의사였던 내가 히피 문화를 받아들인 이유이기도 해.”
그가 똑바로 내 눈을 응시하며 말을 계속한다.
“현대의학으로 이해되지 않는 자연적 치료가 이곳에서 일어나는 것은 명상과, 대기(大氣)의 기운에 맞춰 파종한 농산물을 통해서, 자연과 교감을 이룰 때야. 몸의 신경 전달 물질이 활성화되어 몸속 회로를 이탈하지 않기 때문이지.”
“데이지와 나는 사회와 교류하며, 슬로우 라이프를 즐기는 자연주의자일 뿐이야. 그녀는 순수해, 빛나는 보석처럼. 그리고 맑은 영혼을 가졌어. 데이지를 만나보면 진희 네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이 쉽게 이해될 거야.”

조의 확신에 찬 논조의 히피의 삶과, 지금은 중고 물품을 취급하는 빈티지 숍에서 일하는, 그와 친구 사이로 남게 된 데이지에 대해 나는 공감하며, 데이지를 만나고 싶다고 그에게 말했다.
짧은 겨울 햇살이 자취를 거두기 전, 그가 주섬주섬 일어섰다. 그는 노트에 진다바인 데이지의 집 주소와, 큰 길에서 헤매지 않고 샛길을 통해 산속 집을 찾을 수 있도록 지도를 그려 건네주고는, 작별 인사로 가벼운 포옹을 한다. 의례적인 인사 방법이었지만, 잠시 잠깐 맞닿은 그의 넓은 가슴은 따뜻하게 다가왔고, 살짝 맞댄 볼의 그의 구레나룻 수염의 감촉이 진하게 느껴진다. 나는 볼에 손을 얹은 채, 거실의 유리창을 통해 조가 부모님 집 베란다 의자를 정리해놓고,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겨울 장마가 끝나고, 스노위마운틴에 눈 소식이 들려올 때 나의 겨울 휴가가 시작되었다. 시내에서 가까운 전원풍 건물의 이층에, 나를 포함 5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는, 우리의 디자인 전문 <STUDIO JHIN>은 아직은 영세한 신생 업체이지만, 동생 진후가 ‘디자인 부문 대상’ 수상으로 인지도를 쌓자 차츰 바빠지고 있었다.
나는 고객과의 미팅시간을 제외한 나머지 시간은, 업무 특성상 주로 재택근무를 선호했지만, 빠른 완결을 위해 회사에서 밤샘 근무를 했다. 피곤을 느끼기에 앞서 언제나 그렇듯이, 남과 다른 것을 만들어냈다는 자긍심으로, 기분은 항시 새로워진다. 고갈된 에너지를 충전할 겸 스노위마운틴으로 향했다.
아침 비행 편으로 도착한 캔버라 공항에서, 진다바인으로 가기 위해 나는 렌터카를 대여했다. 단조롭던 시골길은, 스노위마운틴 관문인 쿠마를 지나자 달라졌다. 눈 덮인 들판에 군데군데 모여있는, 고인돌을 연상시키는 돌무더기들과, 앙상한 나무들이 엉겨 범상치 않은 태고적 정경을 보여준다.

진다바인에 들어서자, 노트를 꺼내어 조가 그려준 샛길을 찾아 들어섰다. 검츄리 사이로 난 길을 벗어나자, 자작나무 은색 가지들이 순백의 설원에 펼쳐진다. 나는 차를 세웠다. 생명의 기운이 가득한 겨울 숲에서의 차가운 들숨은, 폐부 깊숙이 파고들며 여독을 날려준다. 천천히 우체통 뒤로 난 눈길을 걸어 데이지집에 도착했다. 얕은 언덕에 자리한 목조 집이었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조의 전언에 의하면, 방학이라 큰애와 둘째는 스키캠프에 참가하고 있고, 셋째와 막내는 외할머니가 있는 쿠마에 있을 것이다. 나는 처마 밑 야외 탁자의 눈을 털어내고 잠시 앉았다.
언덕 아래로 눈 덮인 무채색 숲이 수묵화처럼 펼쳐졌고, 쨍한 공기가 감싼다. 이곳 삶을 위해 고층 빌딩숲에서 탈출을 감행하고, 해방된 삶을 살았던 조의 용기가 새삼 부러워졌고, 그가 그리워졌다.

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카페 ‘버치우드’를 찾아 나섰다. 휴가철을 맞은 카페는,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주문을 하고, 호텔에서 내가 카페 위치를 물었을 때, 이곳 커피 맛을 칭찬하던 리셉션 직원 말이 생각나, 커피머신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깔끔하게 수염을 다듬은 히피 청년이, 진지한 얼굴로 커피를 내리고 있는 게 보인다. 커피를 마시고도 꽤 오랫동안 기다린 후, 신선한 로켓 잎에 구운 늙은 호박, 다진 아몬드와 호두, 고트치즈, 호박씨를 함께 버무리고 그 위에 빨간 석류 알과 통깨가 뿌린 펌킨 샐러드가 나왔다. 샐러드가 담긴 접시 가장자리는, 노란 꽃잎과 민트 속잎으로 장식되어 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었다.
점심을 마치고, 데이지를 만나러 조가 알려준 옆의 빈티지 숍에 들렀다, 안쪽 벽에 낯익은 데님셔츠 드레스가 걸린 것이 보인다. 내가 옷을 살피자, 뒤편에서 정리를 하고 있던 여인의 소리가 들려왔다.
“그 드레스 오리지널이에요. 원소유자가 사이즈가 작아 입지 못하고 내놓은 거랍니다.”
‘머레이 노먼’ 디자인 한정판이었다. 상태도 양호했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옷이라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그녀가 하던 일을 멈추고 내게로 온다. 그녀의 크고 깊은 검은 눈동자는, 사람을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있었다. 붉은 생머리를 가진 범접할 수 없어 보이는… 어찌 보면 무표정해 보이기도 하는 히피 여인이다. 순간 나는 가슴이 뛰어 숨을 크게 들이켰다.
“이 옷의 임자가 되다니 행운녀예요.”
계산을 하며 그녀가 말한다.
“맞아요. 옆 카페의 점심이 너무 맘에 들었는데, 이런 옷까지 찾다니….”
의도적으로 카페를 힘주어 말하자, 그녀가 환하게 웃으며, 카페는 오래전에 자신이 일했던 곳으로 카페 주인이 외삼촌이라고 했다. 도도하고, 다소 쓸쓸해 보이는 첫인상에 근접하기 어렵겠다는 나의 선입견을 깨고, 그녀는 의외로 따뜻했다. 나는 그녀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조는 부모님이 옆집에 살아서 알게 된 친구로, 그가 너를 만나보라고 추천해줬고, 그의 허락을 받고, 오는 길에 너의 집을 들렀다고…. 나는 한국 출신으로 이름은 진희이고. 히피 생활에 관심이 많다며, 나도 모르게 그만 장황하게 수다를 늘어놓고 있었다.
“오우 조가 말한 코리언 친구가 바로 당신이었군요. So Fantastic!”
나지막한 외침과 커다란 눈의 동공이 놀라서 크게 확장된 그녀는 점심시간이라 한적한 숍의 카운터 뒤편으로 나를 이끈다.
“나의 아버지가, 유엔군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인연인지, 진희, 당신이 전혀 낯설지 않아요.”
“어머나! 한국 참전 용사라니. It’s amazing.”
나는 인연에 놀라워하며, 그녀가 드레스를 개키면서 여담으로 들려주는 인근 빌딩들을 소유한, 부친의 이민 성공담에 귀기울였다.

- 터키 산간 마을에서 가난으로 초등학교 5학년을 중퇴하고, 농사를 지어 시장에 내다 팔던 아버지 샤마르 씨는, 한국전쟁에 용병으로 참전했다. PX에서 구입한 카멜 양담배를 암시장에 내다 팔아 돈을 모으다가 종전으로 귀국한 그는, 노동자를 모집하는 호주 이민선(移民船)에 합류해 시드니항에 도착했다. 맨리해변에 자리한 이민자 수용소에서 영국 출신 관리자에게 ‘동구권(東歐圈)의 돼지들’이라는 욕설과 함께 엉덩이를 발로 차이는 수모와 설움을 당하곤 했다. 그는 식당과 호텔에서 접시 닦기와 청소 일을 하며 기반을 잡느라,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고향 처녀 바이올렛을 초청해 결혼했고 집세가 비싼 시드니를 떠나, 스노위마운틴 관문인 산간 마을, 쿠마로 옮겨왔다.
쿠마는 스키장과 리조트가 지척이라 관광객이 사철 끊이지 않는 곳이었다. 음식솜씨가 좋은 엄마는, 히피인 외삼촌을 불러들여 주유소 옆 노점에서 터키 음식을 만들어 팔았다. 텃밭에서 갓 재배한 채소로 만든 신선한 음식은 스키어들 사이에 입소문을 타며 유명해졌다.
그 여세를 몰아, 쿠마 중심가에 엄마 이름을 딴 ‘바이올렛’이라는 상호로 터키식 전문 레스토랑을 차렸고 지역 명소가 되었다. 외삼촌은 쿠마 근교 진다바인에 ‘버치우드’ 카페를 개업했고. 샤마르 씨는 돈을 모으는 대로 부동산을 사들여 재산을 일궜지만, 여전히 손수 기른 꽃과 채소를, 매일 외삼촌 카페와 자신의 레스토랑에 공급하고 있다.

- 이야기를 마친 데이지는 꼼꼼하게 개켜 포장한 데님 드레스를 내게 건네며 덧붙인다.
“우리 부모님은 히피는 아니지만 히피 문화를 좋아해요. 그래서 완성된 요리 접시에 꽃잎으로 장식을 한답니다. 부모님은 음식을 파는 게 아니라 대접하는 마음으로 손님들에게 꽃의 화평도 같이 선물하고 싶으신 거죠.”
그녀의 비번 날, 그녀 집에서 오후의 티타임을 갖기로 하고 숍을 나왔다.

벽난로의 따뜻한 열기로 실내는 훈훈했다. 데이지는 자신이 직접 뿌리를 캐서 만든 민들레 차를 따라준다. 빵 굽는 고소한 냄새가 솔솔 풍겨 나왔다. 그녀는 배려와 인정이 넘쳤다. 오븐에서 갓 구운, 참깨가 뿌려진 터키식 시미트빵을 꺼내며 그녀가 말한다.
“영혼이 닮은 사람은 서로를 알아봐요. 엊그제, 당신이 나를 쳐다보는 그 눈빛에 당신과의 인연에는 어떤 섭리가 있다고 봤어요. 나를 끌어들이는 중력을 느꼈다고 할까… 그리고 평소 한국이란 나라에 친밀감이 있었어요. 짧게라도 아버지에 대해 털어놓고 싶었지요.”
천성적으로 말수가 없는, 한때 요가 강사였던 그녀가 처음 보는 내게 부모님의 스토리를 들려준 이유였다.
그녀는 매서운 겨울바람에 꺾인, 눈밭의 생 나뭇가지를 바구니에 주워 담아 벽난로에 던져 넣었다. 벽난로의 뜨거운 불길에 생가지의 물기가 ‘탁! 타다닥! 탁!’ 리드미컬하게 기존 불꽃과 화합을 이루며 격렬한 불꽃으로 피어난다.
“보세요. 저 젖은 생가지는 혼자서는 절대 불이 안 붙거든요. 기존의 불꽃 속에서는 저렇게 기세 좋게 타오르죠. 우리 인생도 베이스 불꽃이 필요해요. 혼자 애써봐야 연기만 나지요.”
데이지가 착잡한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조엔이라는 기존 불꽃을 통해 그들의 가족이 되고 싶었던 것으로 이해한 나는 왠지 가슴이 뭉클했다.
“조엔이 조의 인생이 나 때문에 엇나갔다고 생각하지만 우린 이혼 상태예요. 물론 내가 이혼을 요구한 것은 조에게, 나와 조엔 우리 세 사람 사이에 형성된 긴장 기류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었죠.”
다만 조가 이혼서류에 마지막 서명을 안했기에 완전한 이혼 성립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이미 서로의 사이에 생긴 간극은 메워지지 않아 이제는 다 비웠다고 한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손을 꼬옥 잡아 주었다. 그녀는 손을 내게 맡긴 채 말했다.
“진희! 당신의 마음을 무시하지 말아요. 우리의 삶이란, 지금 삶인 현재가 과거가 되고 미래가 된다는 걸 알아야 해요. 인생을 낭비하지 말고 기회를 놓치지 마세요. 내가 응원 할게요.”

휴가에서 돌아온 나는 일상으로 돌아왔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조엔 부부도 여행에서 돌아왔다. 나는 조엔과는 가깝지도 멀지도 않게 평행선을 이루는 생활을 유지했다. 논리 정연한 그녀의 우월감이 묻은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지만, 그녀와 자식 간의 개인사에 선을 넘지 않으려는 나름의 조치였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조엔의 둘째 아들과 딸은, 성공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바쁜 일상이라는 함정에 빠져, 부모 집을 거의 방문하지 못했다. 대신 생일이나 집안 행사에 조엔 부부가 자녀들을 방문하곤 했다. 봄이 되어도 조가 찾아오지 않자 조엔은 ‘느슨한 평화’라는 올해의 테마에 맞게 손수 비밀 정원에 흰색과 보라색 꽃모종을 배열해 심었다.

조는 늦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주말, 머리와 수염을 완전히 밀어낸 새로운 스타일에 깔끔한 차를 몰고 나타났다. 얼마 후, 그는 홀로 떠났고 조엔 부부는 집에서 나오지 않았다. 더위는 4월이 되자 한풀 꺾였고. 티타임에, 베란다에 나온 조엔이 나를 보자 곧바로 우리 집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동안 날씨가 더워서 힘들었어요.”
자리를 권하며 내가 말하자
“나는 마음이 더 힘들었어.”
조엔은 우울한 표정으로 그간 겪었던 일을 털어놓는다. 데이지와 아이들을 만나러 갔던 조는 그의 낡은 차가 폐차되어, 봄에 오지 못했고 부모님 뜻대로 이혼 서류에 사인을 했으니 이제 ‘혼자 있고 싶다’며 단절을 통보하고는 휑하니 가버렸다고 한다.
이에, 쇼크를 받은 스콧 씨가 상심으로, 고통스러워한다며 조엔은 외로움을 내비친다. 나는 조엔의 복잡한 심리 상태의 통로에 들어와 미로에 갇힌 느낌이다. 자신의 불꽃을 만들어 보여 줄 베이스 불꽃을 원했던 정념(正念)의 여인 데이지, 수재였던 아들의 일탈이 안타까운 귀부인 조엔 사이가 더욱 요원해 보인다.

부모와 연락을 끊은 조는, 데이지에게 가지 않은 이유로 자의식이 강한 데이지가 조를 거부할 걸 알기 때문이라고. 그리고 진희 네가 왜 생각이 나며 그리운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내용의 이메일을 내게 보내왔다. 메일을 읽으며, 우리가 마음속으로 같은 생각을 했었다는 두려움에 자리에서 일어난 나는, 지난 겨울 구입한 자주색 단추와 벨트가 달린 데님 셔츠 드레스를 찾아 걸쳤다. 그 옷을 내게 건네며 상대를 압도하는 서기(瑞氣) 어린 신비스러운 그녀, 나를 응원하던 데이지가 내 옆에 있는 느낌에 나는, 내 마음 한편을 차지하고 있던 희미하나마 존재감 깊었던 조의 그림자를 애써 지웠다.

조의 잠행이 시작되고, 내가 데이지를 방문했던 것과 우호적인 것을 간과한 조엔은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데이지에 관한 소소한 일에도 “왜 그렇게 말하지? 너가 그리 말하니 어쨌든 유감스러워.” 라며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말수가 적어졌고, 우리 집으로 건너오던 일도 뜸해졌다.

가을이 무르익은 4월 16일 수요일 이른 아침에 “스콧, 스콧….” 조엔이 스콧 씨를 찾는 소리로 앞마당이 술렁거렸다. 전날 밤, 남아있던 와인을 나눠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던 조엔은, 새벽녘 옆자리에 그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나, 평소에도 일찍 일어나 활동하는 것을 알기에 별다른 의심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거실로 나왔으나 스콧 씨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행방은 묘연했다. 불안한 예감에 나를 찾아온 조엔과 함께, 그녀 집안의 문을 다시 열어 확인하고 조엔의 비밀 정원을 살폈으나, 새벽의 순수에 젖은 초록의 느슨한 평화로움만 가득할 뿐 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정원 뒤쪽으로 내려가, 어둑한 와인 저장고의 도어록에 손을 얹으려던 조엔이 멈칫하더니 그대로 얼어붙는다. 미세하게 벌어진 문짝 사이로,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그녀를 젖히고, 내가 힘껏 문을 밀쳤다. 촉수 낮은 전등 아래, 잠옷 차림의 스콧 씨가 가슴을 부여잡은 상태로 쓰러져 있었고. 그의 무릎 아래에는, 샤도네이 한 병이 뒹굴고 있었다.
“스콧! 여기서 뭐하고 있어?”
조엔이 급히 스콧 씨를 잡아 흔들며 소리쳤으나, 그의 팔이 축 처진다. 떨리는 손으로, 000 응급 다이얼을 눌러 구조를 요청하고 털썩 창고 바닥에 주저앉은 나는, 조엔이 아무런 반응이 없는 차가운 스콧 씨의 가슴을 압박하며, 심폐소생술을 시도하는 걸 지켜보았다. 멀리서 들리던 앰뷸런스 사이렌 소리가 대문 앞에서 멎었다. 사망을 확인한 구급요원들은 유명을 달리한 스콧 씨를 병원 영안실로 옮겼다.
부검결과, 스콧 씨가 와인 저장고에서 허리를 굽혀 하단부의 와인 병을 들고 일어서다 심정지가 온 것으로 판명이 났다. 급작스런 참사에, 조엔의 충격이 클거라는 우려와는 달리, 놀랍게도 그녀는 하루 만에 금세 냉정을 되찾았다.
“남편이 고통 없이 떠났고, 또한 간병의 부담을 주지 않고 떠났으니, 나는 그걸로 행복하고 감사하군요. 죽음이란 결코 끝이 아니고 또다른 세상으로의 시작이기에… 이제 스콧을 기쁘게 보내 줄 거예요.”
장례식을 앞두고, 조문을 하러 방문한 이웃들에게 조엔은 상류층의 고급 영어를 구사하며 품위 있게 말한다. 의연한 조엔의 태도를 보며, 앞으로 그녀와 나의 관계가 또 다른 정점으로 치닫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한다. 이제 나는 특단의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국립 갤러리 야외무대 광장에는, 장례식이 시작되는 오전 10시 고인을 기리는 지인 및 정계 인사들과 시민들의 추모 발길로 넘쳐났다. 고인의 손자 손녀들은, 현악 4중주의 힘찬 행진곡을 연주하여, 할아버지의 하늘나라 여정을 환송한다. 조엔의 기획대로 예식은 시종 밝은 연주회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그때 검은 정장 차림의 조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게 보인다. 자신의 잠적 후, 일어난 부친의 갑작스러운 죽음에 대한 충격으로 멍한 표정이다. 늦게라도 참석한 그에게 눈길을 보냈지만, 고개를 떨군 그와는 끝내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그는 나의 메일을 통해, 부친의 부고를 전해 듣고서야, 장례 준비로 분주한 조엔에게 연락을 해왔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사고라고 자책하며, 장례식에 데이지의 자녀들과 동행하고자 했으나, 완강한 조엔의 뜻을 꺾지 못하고 혼자 참석한 것이었다.
장례식 참석을 거부당한 조의 자녀들은, 진다바인 검츄리 숲에서 ‘고인이 된 할아버지의 명복을 빌어 바람결에 실려 보내겠다’고 했다는 말과, 자신은 뉴질랜드로 떠나 늦가을 바람이 데려다주는 대로 살아가겠노라는 조가 보낸 메일이 나의 노트북에 들어와 있었다.
오랜만에 나타난 그를 보자, 삼 년 전 일들이 꿈속처럼 혼돈으로 스쳐 지나가면서, 가슴 한편이 답답하게 아려왔다.

꽃다발에 쌓인 운구행렬이 갤러리를 떠나, 고인이 살던 집 안팎과 골목길에 마지막 인사를 남기고 장지로 떠날 때였다. 서걱거리는 바람 한 줌이 꽃은 지고, 초록 잎만 무성한 자카란다 나뭇가지를, 휘감고 내려와 운구 차량을 스치고 사라지는 환영(幻影)에 현기증이 일었다.
“아, 안 돼. 후우~”
나는 심호흡을 길게 내뿜으며 천천히 앞차를 뒤쫓아 장지로 출발했다. 장지에서 하얀 국화 한 송이를 올리며, 세속을 떠나 자유를 찾아가는 영혼의 명복을 빌었다. 유독, 새파란 가을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아름답기만 한, 한낮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주유소에서 주유구를 가득 채우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검은색 정장을 벗어 버렸다. 황급히 데님 드레스를 찾아 걸치고는 자주색 벨트로 허리를 힘껏 졸라맨 후,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웹사이트에 나를 대신할 ‘STUDIO JHIN’의 디자이너 구인광고를 올리고, 한 달 후에 출발하는 뉴질랜드 항공 표와 오늘 밤 묵을 진다바인 호텔을 예약했다. 간단한 옷가지를 챙겨 가방에 담고, 밖으로 나온 나는 시동을 걸었고. 밤이 늦기 전, 진다바인에 도착하기 위해 M31 하이웨이에 진입했다. 곳곳에 설치된 과속 카메라에 잡히지 않게, 나는 시속 110km 속도계를 주시하며 페달을 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