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외동포기자 24시

98주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식
작성일
2021.09.14

98주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식


 98주년 간토대지진 추도식

98주년 간토대지진 추도식


지난 9월 1일 도쿄의 스마다구 요코아미쵸 공원에서는 제 98주년 간토 대지진의 조선인 희생자들을 위한 추모식이 온라인으로 열렸다. 이 추도식은 ‘일한협회’라는 단체가 주최가 되어 매년 약 700명 정도의 참가자와 함께 하는 추도식이나 최근 코로나의 영향으로 작년에 이어 올해도 온라인 참가로 진행되었다.


지금으로부터 98년 전인 1923년 9월 1일 마그네츄 7.9의 대지진이 일본 관동에서 발생하였다. 그 지진으로 도쿄와 요코하마 중심으로 관동 전역에 피해가 속출하였다. 지진이 발생한 시간이 불을 사용하는 점심시간 때였던 것과 함께 목조건물이 많았던 이유로 도심의 약 6%의 주택이 파괴되는 큰 화재가 발생하였고 약 190만 명이 피해를 입고 사망 또는 행방불명이 10만 명 이상 되었다. 이러한 혼란한 틈을 타서 외국인을 살해하는 사건이 각지에서 발생하였다.



조선인 학살

조선인 학살


그 대표적인 것이 ‘간토 대지진 조선인 학살사건’ 이다. “조선인이 방화를 하고 폭동을 일으킨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등의 유언비어들이 퍼지게 되었고 일본 정부는 뒤숭숭한 민심을 잡기위해 계엄령을 발령하였다. 출동한 경찰관과 군인 뿐 아니라 자경단이라는 민간인들이 군인처럼 경비를 하는 단체가 만들어지고 무자별한 학살이 일어났다. 이 희생자에 대한 <조선인 학살진실>에 관하여 일본 내각 홈페이지에 <방화정보의 페이지>에 기록되어 있었으나 최근 역사수정주의자들의 영향으로 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이 사건에 대한 기술이 삭제될 뿐 아니라 사건 자체를 부정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일본 통계에 따르면 그 당시 조선인 약 6천명이상 뿐만 아니라 중국인 약 600명 그리고 일본인 사회주의자들, 노동운동가 지도자들 또한 10여명도 살해되었다. 그러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학살된 조선인 수는 더 많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 당시 일본 계엄사령부 비밀 공문서를 보면 그 사건은 1919년에 한국에서 일어난 3.1 운동과 같은 독립운동에 대한 보복과 사회주의 사상가들을 죽이기 위해 만들어진 사건이라는 기록이 있다.


조선인 학살 추도식 포스터

조선인 학살 추도식 포스터



2017년부터 5년간 도쿄도 시장 고이케 유리코는 추도문을 내고있지 않다. 고이케씨는 관동대지진 희생자에 대해 추도문을 내고 있기 때문에 특별히 조선인 학생 추도식에 별도의 추도문을 보낼 필요는 없다는 이유를 들고 있다.


조선인 학살 추모비는 도쿄의 요코아미쵸 공원에 있고 이 추도식은 1974년부터 매년 열리고 있다. 이 공원은 1930년 9월에 문을 연 도쿄도립 공원으로 원래 이곳은 육군피복창을 만들던 공장이 있던 장소이다.


올해 행사에는 김순자 한국 전통예술연구원 대표가 희생자들의 영혼을 위로하는 춤을 추었다. 또한 ‘동경가족’, ‘남자는 힘들다.’라는 유명한 영화를 만든 일본의 거장 영화감독인 야마다 요지 감독은 서면으로 추도식에 메세지를 보내왔다. 그는 “관동대지진때 많은 조선인들이 차별과 편견으로 희생 당하였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된다, 이런 사실을 후세에 재대로 전달할 때 평화가 이루어질수 있다.” 라고 말했다.


98주년 관동대지진 조선인학살 추도식


일본 사회는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역사적 사실을 잊지 않고 다음세대에 전해주기 위해서라도 왜 조선인 학살 사건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분석이 필요할 것이다. 조선인 학살사건이 일어나고 건 100년이 가까워져 오는 이 시점에도 민족차별주의와 헤이트 스피치(hate speech)가 공공장소에서도 용납되는 일본 사회의 어두운 면을 일본인들 스스로가 직면할 용기가 필요한 시기이다. 2011년 일어난 3.11 동북대지진에서도 “피난소로 대피한 빈집들을 외국인들이 도둑질을 하고 있다.”라는 유언비어가 퍼졌었었다. 일본 대학교 연구조사에 따르면 지금까지도 그 유언비어를 진실로 믿고 있는 일본인들이 다수 있다는 연구결과도 나와있다.


일본 정부는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해 피해자 수를 줄어서 발표를 했고, 자경단 일부를 형식적으로 조사했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죄 방면했다. 이 학살 사건으로 사법적 책임을 진 사람이나 기관은 전혀 없다. 조선인 학살에 대한 규명과 사회적 책임을 재일동포 커뮤니티와 한국정부가 함께 끊임없이 일본 사회에 요구해야 하는 부분이 남아있다.



고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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