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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자 사랑 유난스런 한국 할머니 부대가 떴다
구분
문화
출처
KOFICE
작성일
2021.10.18

전 세계 여러 다양한 문화 가운데 한국만큼 할머니가 대우받는 곳도 드물다. 다른 나라에서는 창조주가 아버지이지만 한국의 창조신은 마고(麻姑) 할미가 아니던가. ‘할머니 효과’라는 표현이 있다. 인간과 범고래, 들쇠고래, 흰고래, 일각돌고래 등 다섯 종의 동물에게만 나타나는 사회 현상으로 할머니가 자식이나 손주의 생존에 도움을 준다는 가설인데, 이를 증명하는 여러 증거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현재 ‘잉크 조이’라는 사업체를 운영 중인 조현석(Joe Cho, 40세) 씨는 최근 할머니들을 위한 공간, ‘그래니 스쿼드(Granny Squad, 할머니 부대)’를 오픈했다. 운동기구 수출입, 병원 지사장 일 등 다양한 인생 경력의 소유자인 그는 외할머니로부터 넘치는 사랑을 받았던 손자이기도 하다. 지금 그의 할머니는 가벼운 치매를 앓고 계시지만 그래도 손자인 그가 찾아가면 눈물 날 정도로 반겨주신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자녀들과 손자손녀들에게 듬뿍 사랑을 주시고, 아껴두었던 좋은 것만 주려 하시죠. 그런데 나이가 드시면서 사회적으로 소외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특히 LA는 시니어를 위한 경로당 같은 공간도 제한적이고 자녀들의 일상도 지나치게 바쁘다 보니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더욱 외로워하시는 것 같아요. 이처럼 메마른 도시 LA이지만, 고요한 환경과 편안한 의자에 앉아 쉴 수도 있고, 물건 하나를 구입하더라도 다른 이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는 그런 도심 속의 힐링 공간을 마련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래니 스쿼드’의 문을 열게 됐습니다.

 

그는 가끔씩 한인 타운 곳곳에서 카지노를 방문하기 위해 무료 버스에 올라타는 시니어들을 보며 가슴이 아팠다고 털어놓는다. 월초, 연금을 받으면 곧바로 카지노를 향하는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뭔가 의미 있는 다른 할 거리가 있다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을 늘 해왔다는 것이다.

 

‘그래니 스쿼드’의 아름다운 공간에서 친환경 수세미, 무공해 비누를 함께 만드는 등 무언가를 함께 배우고 한다면 황혼녘의 인생을 무의미하게 그냥 보내는 것이 아니라, 작은 삶의 의미를 발견해가실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요즘은 시니어라도 너무들 젊고 건강하셔서 충분히 일을 할 수 있으신 것 같아요. 그런데도 일할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잖아요. 그렇게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분들이 이곳에 와서 수공예품을 함께 만들어 그것을 공동으로 진열해놓고 판매한다면 그 수익을 넉넉하게 나눠쓸 수도 있지 않겠어요? 또한 그분들의 작업장이 될 이 공간에서 함께 대화도 하고 식사도 하는 등 삶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진짜 말 그대로 ‘할머니 부대’가 될 수 있겠죠. ‘그래니 스쿼드’가 그런 플랫폼이 되었으면 하고 바랍니다.

 

젊은 남성인 그는 어쩌다가 ‘그래니(할머니)’라는 특정 그룹에 대해 이처럼 큰 관심과 애정을 갖게 됐을까. 무엇보다 그의 조부모들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았던 기억 때문이다. 그는 또 “부모가 버린 나를 할머니가 키워주셨어요. 힘든 노구를 이끌고서 제게 늘 따뜻한 밥을 지어주셨던 사랑을 잊지 못해요.”라는 얘기를 지인들로부터 많이 들었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이 공간에서 수세미를 함께 뜨고 비누를 만들다 보면 노년을 파괴하는 치매도 예방해드릴 수 있을 것 같았다.

 

높은 천정에 드넓은 ‘그래니 스쿼드’는 그의 세련된 취향을 반영하듯 도회적이면서도 따뜻함이 있고 치유의 에너지마저 흐른다. 도심 한복판의 오아시스와 같은 공간을 꾸미겠다는 그의 의도가 이 공간에 완벽하게 구현된 것이다. 현재 매장에는 모양도 색깔도 아름다운 친환경 수세미와 무공해 수공예 비누, 그외 그린 프로폴리스 (면역 기능 강화 건강 보조제), 유기능 참기름 등, 친환경적이고 건강에 유익한 제품들을 진열해놓았다. 특히 참기름은 멕시코의 수녀님들이 만든 수제품으로, 멕시코의 농부들에게 대부분의 수익이 돌아가는 공정 무역 상품이기도 하다.

 

이렇게 실내를 꾸미고 물건들을 채워넣기는 했지만 아직 제대로 된 오프닝을 하지 못했다. 펜데믹 기간이 길어진 것도 아직 오프닝을 하지 못한 여러 이유 중 하나이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그래니 스쿼드’를 운영해나갈 것인지에 대해 다각적인 계획을 갖고 있다. 우선은 수공예 하는 이들이 이 장소에서 자신들이 직접 만든 작품을 진열해놓고 판매할 수 있게 하려 한다. 수익을 내야 운영도 할 수 있는 만큼, 갤러리처럼 일정 수수료를 받는 구조도 생각 중이다. 또 할머니들이 이곳에 오셔서 함께 만든 수공예품들도 전시 판매할 예정이다. 그 작품들에 ‘그래니 스쿼드’라는 브랜드를 특화하여 키울 생각이다. 수익이 나면 전체 수익에서 5퍼센트를 떼어 좋은 일을 위해 기부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는 또한 이 힐링 공간을 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눠 사용하고 싶어 한다. 편안하고 아름다운 공간은 진열대를 치우면 생일 잔치, 프라이빗 파티 등 이벤트 장소로도 그만일 것 같다. 이를 위해 그는 여러 프로그램을 구상하느라 머리에 쥐가 날 것 같다며 웃는다. 지난 주에 진흥원 기사로 소개했던 그레이스 장 공방의 그레이스 원장은 조현석 씨의 아름다운 소망에 감동에 올해 1월부터 의기 투합해 도움을 주기 시작했단다.

 

예전엔 할머니라 불렸던, 하지만 아직 젊은 60대 정도의 여성들이 일할 만한 곳이 없어졌어요. 마냥 길어진 펜데믹 때문에 노인센터도 못 가고 계시죠. 그렇게 소외되고 외로운 분들이 이런 공간을 통해 스스로 뭔가를 만들고, 그것을 판매해 수익도 생긴다면 참 좋겠다, 싶었어요. 설사 수익이 생기지 않더라도 만든다는 것만으로도 뿌듯하고 삶의 활력소가 되지 않겠어요? 저 역시 그런 마음으로 지난 30년 동안 공예를 가르쳤거든요. 제가 지금 현재도 공예 클래스를 운영하고 있기에 조현석 씨의 아이디어와 필요가 딱 맞아떨어진 셈이죠. 형편이 어려운 분들이 오시더라도 뜨개질, 비누만들기 등을 여기서 배우고 그것을 판 돈으로 재료비와 수강료를 낸다면 결국 무료로 배우게 됩니다. 그렇게 한인 타운의 노년층을 행복하게 만드는 기특한 비전에 제가 참여하게 되어 기쁩니다. 잘 되고 안 되고는 나중 문제라고 생각해요. 시작이 반이고, 의도가 선하고 아름다운 만큼 잘 될 것이라고 믿어요.

 

한국 할머니들의 유난스러운 손자 손녀 사랑, 그 사랑이 시스템으로 체계화되어 생산과 수입 창출, 그리고 더 나아가 아름다운 커뮤니티를 조성해 더 밝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가슴에 품고 ‘그래니 스쿼드’의 문을 나섰다. 또한 이 아름답고 지속가능한 시스템이 미국 주류 사회에까지 더 널리 확산돼 ‘할머니 한류’를 일으키는 것도 꿈꿔본다.


<할머니들이 쉬면서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래니 스쿼드를 마련한 조우 조 씨>

<할머니들이 쉬면서 생산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공간, 그래니 스쿼드를 마련한 조우 조 씨>


<그래니 스쿼드의 실내 전경>

<그래니 스쿼드의 실내 전경>

<손뜨게로 만든 친환경 수세미>

<손뜨게로 만든 친환경 수세미>


<아름다운 색깔의 무공해 비누>

<아름다운 색깔의 무공해 비누>


<그래니 스쿼드의 진열대>

<그래니 스쿼드의 진열대>


<색색의 모양도 예쁜 친환경 수세미>

<색색의 모양도 예쁜 친환경 수세미>

<색색의 모양도 예쁜 친환경 수세미>


<색깔도 모양도 아름다운 비누>

<색깔도 모양도 아름다운 비누>


<멕시코에서 가져온 공정무역 참기름>

<멕시코에서 가져온 공정무역 참기름>


※ 사진 출처: 통신원 촬영

박지윤

  • 성명 : 박지윤[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 미국(LA)/LA 통신원]
  • 약력 : 현) 마음챙김 명상 지도자. 요가 지도자 전) 라디오코리아 ‘저녁으로의 초대’ 진행자 미주 한국일보 및 중앙일보 객원기자 역임 연세대학교 문헌정보학과 졸업 UCLA MARC(Mindful Awareness Research Center) 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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