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인터뷰

[홍콩] 조환복총영사/대공보/인터뷰
출처
외교부
작성일
2007.02.28
원본URL
http://www.mofat.go.kr/webmodule/htsboard/template/read/korboardread.jsp?typeID=11&boardid=754&seqno=302482&c=TITLE&t=&pagenum=56&tableName=TYPE_ASSOCIATE&pc=&dc=&wc=&lu=&vu=&iu=&du=

일국이체제에 대한 조환복총영사의 견해

 賀晨 기자, 대공보 2.28자

주홍콩대한민국총영사관의 조환복 총영사를 본지 기자가 탐방하였을 시 그는 한국인의 근엄하고 위엄있는 모습으로 인사를 건넸다. 그는 3월초 홍콩에서의 2년반동안의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며, 새로 부임할  총영사에 대해 새총영사는 자신보다 더 중국경험이 풍부하다며 겸손을 아끼지 않았다.

올해 7월1일이면, 홍콩이 중국에 반환되는 10주년이 된다. 10년동안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역사상에 남을 많은 일들을 만들어냈다. 이날을 기념하기 위해 본지 기자는 홍콩주재 영사관을 탐방하면서 그들이 지난 10년 동안 홍콩의 변화를 어떻게 보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오늘 먼저 독자들과 만나 사람은 주홍콩대한민국총영사관의 조환복총영사이다.

반환 10년 동안의 적극적인 변화

2004년 9월 주홍콩대한민국총영사로 부임할 당시를 조환복 총영사는 스스로 행운이었다고 말한다 「 2004년은 특별한 시기였고, 입법회 선거가 있었고, 사스의 영향력에서 홍콩경제가 막 살아나는 시기였다. 그런 어려운 시기도 이미 과거가 되었고, 정부와 시민들은 미래에 대한 자신감으로 충만해 있어, 이런 시기에 부임했던것이 참 행운이었다 」

비록 홍콩에서 보낸 시간이 길지 않지만, 그는 홍콩에 대한 이해함이 많았고, 말하는 것 마다 모두 맞는 말이었다. 그의 눈에 비친 홍콩은 지난 10년동안 경제와 정치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정치적으로 홍콩자치가 정말로 실현되고, 경제도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 더욱이 중국대륙과의 경제협력이 심화된것이 가장 두드러졌다. 」그는 이런 변화를 적극적이라고 표현했다.
조환복 총영사는 홍콩의 발전과 일국이체제는 떨어질 수 없는 요소라고 밝혔다. 「10년전 많은 이들은 일국이체제에 대해 이론상은 이해했지만 그것이 실현가능할지에 대해 알지 못했다. 10년후 본인역시 말할 수 있는 것은 일국양제가 실행될 뿐 아니라 실행 역시 아주 좋았고 이것이 바로 홍콩자치라고 표현할 수 있다. 」

一國의 작용은 아주 특별하다.

조환복 총영사는 「홍콩에게 있어 과거 10년은 아주 의미있는 10년이었고, 이 기간중 홍콩은 경제, 정치, 사회민생분야에 있어 풍파를 경험하였지만 결국 잘 넘어갔다. 그중 홍콩인들의 고분고투외에도 일국의 작용은 아주 특별했다. 중앙정부가 개인자유여행과 CEPA 정책을 통해 홍콩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해 많은 애를 썼다. 중앙이 홍콩문제를 처리하는데에 있어서도 줄곧 세계와 홍콩의 허락을 받았고, 홍콩인들이 스스로 자치할수 있도록 도왔다. 2003년 7․ 1 대규모 시위에서도 중앙정부가 도전을 받았긴 했지만 중앙이 보였던 반응도 아주 양호했다. 」고 밝혔다.

그는 홍콩반환이래, 신문, 언론의 자유도 역시 조금도 약해지지 않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홍콩의 매스매디어는 언론의 자유가 충분하며, 그들이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표현할 수 있는 곳이라고 밝혔다.

일국양제와 홍콩의 미래에 대해, 그는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10년동안의 홍콩에서의 일국양제를 보면, 미래 40년간의 일국양제도 지속될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밝혔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서 그는 감개무량한 듯 ‘반환은 홍콩에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것 아니냐!’ 고 자신의 심정을 밝혔다.
97년 홍콩이 반환되고 나서 한홍양자 무역관계에도 영향을 주었다. 조환복 총영사는 97년 홍콩반환역시 의미가 깊지만, 한홍간의 무역협력에 더욱 많은 영향을 미쳤고, 92년 한중수교이후와 아시아 금융위기가 있었다. 한중수교전에는 홍콩은 중국으로 가는 관문역할을 해서 홍콩을 통해 한국과 중국간의 무역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92년 수교이후 한국상인들은 중국에 직접 투자를 할 수 있게 되고, 중국과의 대외무역이 발전해 감으로 홍콩의 관문역할로서의 지위는 약화되었고, 한홍간의 무역관계도 상대적으로 감소되었다고 밝혔다.

CEPA 추진으로 한홍무역관계 변화

아시아 금융위기후 한홍콩간의 무역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한가지 수치를 예로 들었다. 금융위기전에는 한국의 82개의 금융기관들이 홍콩에 지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금융위기후에는 16-7개가만 남게 되었고, 최근 1-2년 사이 20개로 성장했다. 만약 한 회사에 5명의 직원이 있다고 가정하고 한 직원당 가족 구성원을 4명으로 잡아 계산하면 한국국민 1천명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이라고 예를 들었다.

조환복 총영사는 한홍간의 투자개척에 대해 홍콩에는 여전히 그 공간이 남아있다며 CEPA를 들었다. 그는 홍콩은 광동 및 내륙 연해지역과의 긴밀한 경제협력을 지속하고 있고, CEPA가 체결되고나서 홍콩이 중국남부의 省市에 대한 대문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지리 및 문화적인 요인으로 한국인의 대중국투자는 주로 동북, 화북에 몰렸었다. 하지만 갈수록 한국기업은 투자개념을 바꾸어서 중국의 남쪽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해당 지역의 투자환경에 익숙하지 않으면 많은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홍콩회사들은 이런 방면에 있어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한국이 홍콩과의 협력을 강화하면서 CEPA를 충분히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는 한국정부도 한국기업에게 CEPA에 대한 선전을 하고 있고, 많은 한국기업들이 이에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홍콩의 또다른 우수한 점에 대해 자유롭고 체계화된 금융체계를 들었다. 홍콩이 아시아의 금융중심으로서 그 지위를 공고히 하고 있으며, 아시아 금융위기 후에, 한국정부도 경제구조개혁을 통해 금융 및 관련 산업을 육성중에 있다. 홍콩의 많은 제도들이 한국에게 참고가 되었다. 또한 물류발전에 있어 두지역간 협력 가능성을 들었다. 홍콩은 동남아의 중요 물류중심으로 한국의 물류발전은 아시아 북부지역에 위치한 점을 이용해 두지역이 협력할 여지가 많다고 밝혔다.

홍콩은 한국문화를 알리는 플랫폼역할

한국문화열풍이 최근 홍콩에 불자 본인도 많은 질문을 받는다. 그는 한류에 대해 제가 홍콩총영사로 부임하기전 한 친구가 저에게 홍콩에서 총영사를 하는 것은 정말 기쁜 좋게 일할 것이라고 일러주었다. 나도 부정하지 않는 것은 많은 영사들은 업무량도 많을 뿐 아니라 국가의 형상과 문화를 알려야 하는데, 홍콩사람들은 주동적으로 한국 드라마와 한국영화를 보고 한국문화를 익히고 있어 내가 오히려 freerider가 되었다고 미소를 지었다.

한국드라마는 아시아에서 안정적인 시장을 형성하였고, 한국에 많은 수입원이 되었다. 2년전 대장금은 49%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장금열풍까지 발전해 그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다. 최근 홍콩의 두방송국에서 한국드라마를 방영하고 있고, 한국드라마가 시청률을 보증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조환복 총영사는 홍콩은 인구7백만으로 시장이 작지만, 홍콩이 플랫폼역할을 해서 선전을 잘 해준다면 홍콩을 통해 중국 대륙과 해외 중화권시장까지 대중문화를 선전할 수 있을 것을 보고 있다고 한다. 그는 홍콩의 무선방송이 광동지역에서도 그 시청률이 높아 많은 해외 화교들이 인터넷을 통해 시청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한국대중문화상품의 도매상으로서의 효과도 보고 있다고 밝혔다.
 
한류의 영향력은 홍콩인의 한국어 학습 열기에서도 발휘되고 있어, 대학의 전문대과정에서도 한국어과정이 개설되고 있다. 홍콩정부에서도 이를 관심 있게 지켜보면서 작년부터 홍콩정부와 협의해 한국어가 지속진수기금(持續進修基金)을 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또한 조총영사는  홍콩대중들이 성숙해져 한국문화에 대한 관심이 한국드라마에만 국한되지 않고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데에 기쁨을 드러냈다.  끝.

이전글
이전글이 없습니다.
다음글
[홍콩] 석동연총영사/봉황위성/인터뷰